how · 06

현재의 how

내가 선택한 방향

how는 발견된 우주의 명령이 아니다. 내가 선택한 방향이다.

나는 경험의 질과 양을 높이는 것이 좋다고 믿는다.

나는 모든 규범이 결국 증명할 수 없는 믿음에 기반한다고 본다. 나의 마지막 규범적 믿음은 EQQ, 경험의 질과 양이다.

삶과 의식, 자유와 평등, 사랑과 건강, 수명과 제도는 그 이름 자체를 최종가치로 두기보다 경험에 무엇을 하는지 다시 묻는다.

EQQ는 답안지가 아니라 번역기다. 그 유용성은 보편성에서, 보편성은 얇음에서 나온다고 본다. 전제를 덜 요구하기 때문에 더 많은 가치와 경험주체를 같은 질문 안에 놓을 수 있다. 번역은 질문의 해상도를 높인다.

선악은 우주에 새겨진 성질이라고 보지 않는다. 우리는 무엇을 선악이라 구분하고 어떤 규범을 만들 것인지 선택한다. 나는 그 선택 역시 EQQ에 무엇을 하는지 묻는다.

나는 경험주체의 선택 이유를 끝까지 추적하면 자기 EQQ에 닿는다고 본다. 그러나 자기 EQQ가 연결되는 세계의 범위는 매우 넓을 수 있다. 공동의 판단에서는 누구의 EQQ를 어디까지 고려하고, 서로 다른 경험을 어떻게 비교하고 결합할지가 거대한 질문으로 남는다.

경험을 고려하는 범위는 원칙적으로 인류에서 끝나지 않는다. 경험하는 동물과 AI, 미래의 경험주체도 같은 질문 안에 들어올 수 있다.

how는 발견된 우주의 명령이 아니다. 내가 선택한 방향이다.

나는 경험한다는 사실에서 시작했다.나는 이 경험을 더 좋은 경험으로, 더 오래 이어가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