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QQ는 답안지가 아니라 번역기다.
EQQ는 자유가 평등보다 중요한지, 한 사람의 큰 향상과 여러 사람의 작은 향상 중 무엇을 택해야 하는지, 현재와 미래 중 무엇을 우선해야 하는지를 자동으로 답하지 않는다.
대신 서로 다른 가치의 언어를 하나의 질문으로 옮긴다. 자유는 경험에 무엇을 하는가. 평등은 경험에 무엇을 하는가. 사랑은, 건강은, 생명은, 제도는 경험에 무엇을 하는가.
나는 번역기의 유용성이 보편성에서 나오고, 그 보편성이 얇음에서 나온다고 본다.
여기서 얇다는 것은 내용이 빈약하다는 뜻이 아니다. 미리 받아들여야 할 전제가 적다는 뜻이다. 자유나 평등, 인간이라는 종, 생물학적 삶, 특정한 좋은 삶의 형태를 최상위 가치로 먼저 정하지 않는다. 먼저 묻는 것은 하나다.
경험이 있다면, 그 경험의 질과 양에 무엇이 일어나는가?
전제가 얇을수록 더 많은 가치와 경험주체를 같은 질문 안에 놓을 수 있다. 적용범위가 넓어질수록 서로 다른 가치체계 사이의 공통 언어가 될 가능성도 커진다.
얇음 → 보편성 → 번역 가능성
내가 말하는 보편성은 모두가 EQQ에 동의한다는 뜻이 아니다. 가능한 한 적은 전제로 더 많은 가치와 경험주체를 같은 질문 안에 놓을 수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나는 EQQ를 내가 검토한 가치들 가운데 가장 얇고 보편적인 최종 규범공리의 후보로 본다. EQQ도 하나의 믿음이자 권위다. 다만 나는 그 권위를 우주의 명령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번역은 질문의 해상도를 높인다. “자유가 중요하다”에서 멈추지 않고 누구의 어떤 경험이 얼마나, 어떻게, 얼마나 오래 달라지는지를 묻게 한다. 정책 하나를 두고도 얼마나 많은 주체에게, 어떤 질의 변화를 만드는지, 분포와 극심한 고통은 어떻게 달라지는지 묻게 한다.
EQQ는 질문을 지우지 않는다. 오히려 더 정밀하게 만든다. 답을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가치의 언어를 경험의 언어로 번역해 함께 묻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