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AT · 01

나는 경험한다

경험과 인식

내게 주어지는 것은 나의 경험뿐이다.

나는 경험한다.내게 주어지는 것은 나의 경험뿐이다.나는 경험 밖에 존재할 수 없다.

내가 확신하는 것은 나는 경험한다는 사실이다. ‘나는 경험 밖에 존재할 수 없다’는 문장은 두 겹으로 읽힌다. 인식론적으로 나는 경험 밖을 경험할 수 없다. 존재론적으로는 경험이 완전히 사라진 뒤에도 지금 의미의 ‘나’가 존재한다고 부를 수 있는지 묻는다. 그렇다고 경험하지 않는 모든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여기서 ‘나’는 경험하는 주체를 부르는 말이다. 그 이름이 시간에 걸쳐 하나로 이어지는지, 몸과 기억이 변해도 같은 나인지까지 뜻하지 않는다. 그 질문은 뒤로 미룬다.

감각, 생각, 추정, 상상과 꿈은 서로 다르지만 모두 경험이다. 관찰도, 추론도, 가늠도 경험이다. 내가 경험 밖을 추정해도 그 추정은 나의 경험 안에서 일어난다.

내가 나비가 되는 꿈을 꾸었는가.나비가 내가 되는 꿈을 꾸고 있는가.어느 쪽이어도 경험은 있다.

호접몽은 무엇이 꿈이고 무엇이 현실인지 결정해 주지 않는다. 내가 현실이라고 부르는 경험과 세계의 궁극적 모습이 같다고 확신할 수 없게 한다. 그래도 경험이 있다는 출발점은 남는다.

나에게 세상은 나의 경험이다. 다른 경험주체가 존재한다면, 그에게 주어지는 세상 역시 그의 경험일 것이다.

뇌가 다른 뇌와 합쳐지고 AI와 결합하고 지금은 가늠할 수 없는 차원을 인식하게 되더라도, 내게 주어지는 한 그것은 경험이다. 경험의 모습은 달라질 수 있다. 그래도 나는 경험 밖에 존재할 수 없다.

경험 밖에 무엇이 있는지, 더 나아가 ‘밖’이라는 구분 자체가 적절한지는 모른다. 그것을 생각하고 가늠하는 일도 나의 경험이다. 시뮬레이션 밖을 알게 되더라도 그 앎 역시 나의 경험 안에서 일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