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AT · 06

반응과 선택

주체성과 스펙트럼

선택은 ‘더 많은 나를 거친 반응’일 수 있다.

행동에는 원인이 있다.선택에는 이유가 있다.

이 문장은 우주 전체의 결정론이 과학적으로 확정되었다는 뜻이 아니다. 내가 현재 인간의 행동과 선택을 이해하는 방식이다.

나는 자유의지를 원인으로부터 독립된 별도의 힘으로 보지 않는다. 선택도 본질적으로 반응일 수 있다고 본다. 무릎반사와 오랜 숙고 끝의 결정은 서로 다른 종류의 사건이라기보다, 내부에서 거치는 과정의 깊이와 복잡성이 크게 다른 반응의 스펙트럼에 가깝다.

그래서 주체성도 원인에서 자유로운 정도라고 보지 않는다. 기억, 감정, 가치관, 미래 예측, 자기모델, 타인에 대한 이해 같은 더 많은 내부 상태와 경험을 거쳐 행동이 나올수록 우리는 그것을 더 주체적인 선택이라고 부를 수 있다. 선택은 ‘더 많은 나를 거친 반응’일 수 있다.

나는 선택에서 ‘그냥’을 이유 없음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그냥 좋다’, ‘그냥 했다’는 말은 원인이나 이유가 없다는 뜻이라기보다, 그것을 모르거나 인지하지 못했거나 언어화하지 못했다는 뜻일 수 있다.

박테리아와 식물의 움직임은 반응 쪽에 가깝다. 인간의 행동은 훨씬 많은 내부 상태를 거치기에 우리는 더 자주 그것을 선택이라고 부른다. 그 사이에 해파리, 선충, 곤충 같은 존재들이 놓인다.

해파리는 경계에 선 존재라기보다, 애초에 경계가 하나의 선이 아닐 수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처럼 보인다. 반응이 얼마나 깊고 복잡해질 때 선택이라고 부르는 것이 유용한지, 그 과정에서 경험은 언제 발생하는지, AI는 어디에 놓이는지는 열린 질문이다.